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손수정 원장
1988년에 공직에 입문해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바이오생약심사부장, 의료제품연구부장,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을 역임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36년간 재직했으며,
2025년 3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중앙대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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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직전 ‘공부 잘하는’ 약 성행?!
매년 수능을 비롯해 중요한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 잘하는 약’ ‘집중력을 올려주는 약’ 등 부당·불법 판매 글이 온라인에서 기승을 부린다.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과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 치료 목적 외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의료용 마약류인 ADHD 치료제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 등을 불법 판매하는 것이다. 2023년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나눠줬다가 붙잡힌, 일명 ‘마약음료’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마약류는 마약청정국이었던 한국 사회에 어느덧 꽤 깊숙이 뿌리 내렸다. 특히 높은 교육열과 함께 메틸페니데이트 오남용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수능 직전 열흘 동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집중적으로 점검한 결과, 메틸페니데이트 불법 유통·판매 게시물 711건이 적발됐다. 2026학년 수능을 앞둔 지금, ADHD 치료제의 처방 현황과 오남용 문제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arcotic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NIMS)으로 보고된 의료용 마약류 취급 내역을 보면, 2024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 건수는 약 1억 건, 처방량은 19억2천663만 개로 최근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 중 메틸페니데이트를 처방받은 환자 수를 분석한 결과, 2020년 14만3천471명에서 2024년 33만7천595명으로 연평균 23.9% 증가했다. 특히 연령대별 처방량을 보면 10대 미만은 2020년 511만 개에서 2024년 1천312만 개(연평균 증가율 26.6%), 10대는 2020년 1천373만 개에서 2024년 3천249만 개(연평균 증가율 24.0%)로, 20대 미만 환자의 처방량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ADHD 환자 및 메틸페니데이트 처방량의 증가 추세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공식 통계·연구 자료를 보면 주로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증가세가 뚜렷하다.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의 자료에 따르면 메틸페니데이트의 전 세계 생산량은 2012년부터 늘기 시작해 2023년에는 82.6t에 달했는데, 이는 INCB가 데이터를 수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메틸페니데이트는 향정신성 물질 중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되었다. 이러한 ADHD 환자 및 메틸페니데이트 처방량의 증가 원인으로는 진단 기준 변화, 의사와 대중의 ADHD 진단에 대한 인식 및 친숙도 증가, 그리고 치료 접근성 향상과 같은 공중 보건 관련 요인 등이 언급되고 있다.
ADHD 치료제와 성적 향상, 상관관계 뚜렷하지 않아
국내에서는 ADHD 치료제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잘못 인식되면서, 유명 입시 커뮤니티에서 학업 성적 향상을 목적으로 특정 ADHD 치료제를 복용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도 부정확한 정보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영상 플랫폼에 게시된 ADHD 콘텐츠의 절반 이상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부분은 의료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올린 정보였다.
ADHD는 뇌전두엽 이상으로 도파민 활성이 저하돼 여러 가지 증상을 겪게 되는 질병으로, 도파민 활성을 높이는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함으로써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 약리학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는 뇌 신경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집중력을 높이는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고 중추신경계, 특히 전전두엽 피질에서 자극 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ADHD 환자가 아닌데도 관련 약을 복용할 경우 정상적인 도파민 수준이 오히려 과잉 활성 상태가 되어 여러 부작용에 노출될 수 있다.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면 뇌의 흥분이 발생하고, 약물에 중독될 우려도 커진다. 수많은 전문의들이 치료(treatment) 목적이 아닌 정신자극(enhancement)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다.
메틸페니데이트 오남용은 금물
건강한 동기부여 집중하길
메틸페니데이트는 마약류관리법상 향정신성의약품 중 두 번째로 높은 ‘나’ 등급으로, 오남용 우려가 심하고 남용할 경우 신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는 약물로 분류된다. 간혹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사건·사고 기사에서 접하게 되는 프로포폴과 졸피뎀도 이보다 두 단계 낮은 ‘라’ 등급에 속한다.
이렇듯 메틸페니데이트는 수능과 같은 중대사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가볍게 복용하기에는 부작용에 따른 컨디션 저하, 불안, 심리적 의존 가능성 등 위험성이 높은 약물이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국내 의약품부작용보고시스템(Korea Adverse Event Reposting System, KAERS) 이상사례 통계에서 메틸페니데이트의 다빈도 이상사례로 오심, 식욕부진, 불면증, 구토, 두통, 초조 및 강박 등이 보고되고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ADHD 또는 수면발작 등의 질병 치료 목적으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하는 전문의약품으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온라인 등으로 판매·구매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메틸페니데이트를 복용할 경우 주의력 결핍 등의 증상 완화에 따른 학업 능력 증가 사례가 종종 나타날 뿐, 일반적으로는 사고력을 요구하는 학업이나 복합적인 인지 기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위험을 무릅쓰고 일시적인 각성 효과를 얻는다 해도, 장기전인 수험 생활에 큰 도움이 못 될 확률이 높다. 수년간 쌓아온 노력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한 컨디션 조절, 양질의 수면, 균형 잡힌 영양 섭취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집중력 강화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 본인이 스스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진정한 동기부여를 통해 수험 생활에 집중했을 때, 결과를 넘어 그 과정 자체에 만족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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