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은 전 세계가 오랜 기간 유지한 자유무역 질서에 균열을 일으켰다. 내일신문과 내일교육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주제로 하는 탐구 활동 수업 ‘FTA, 학교로 가다 4.0’ 프로그램을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진행했다. 전국 10개 고교에서 300명이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2~3일에 걸쳐 ‘FTA 데이터를 활용한 통계와 회귀분석 실습’ ‘FTA 이행과 농업 부문의 파급 영향’ 수업을 들은 후 조별 탐구 주제를 선정해 보고서를 작성·발표하는 것이 골자다. 학교 수업에서 접하기 어려운 통계·분석법을 공신력 있는 자료로 다뤄보며, FTA에 수학·경제·사회 개념을 접목해 탐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는 ‘미국 관세 정책 사례로 본 FTA의 이해와 전망’을 수업에 반영, 세계적 이슈인 미국발 관세 압박과 FTA를 연계해 눈길을 끌었다.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김영준 교수에게 올해 ‘FTA, 학교로 가다 4.0’ 프로그램의 핵심과 의미를 들었다.
취재 정나래 기자 lena@naeil.com
사진 배지은
Q. 대학교수로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FTA 수업에 수년째 참여하고 있다. 그 동력은?
‘FTA, 학교로 가다’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 고등학생에게 농업과 농업경제학을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했다. 알다시피 우리 청소년은 농업에 무관심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농업을 알게 되고, 관심이 커져 농업 또는 농업경제학 관련 학과에 진학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는 생각이 전국의 학교를 찾게 하는 동력이다.
Q. 새로 들어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관세 공격에 나서고 있다. 자유무역과 관련이 깊은 FTA를 다루는 수업에서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반영했나?
수업을 준비할 당시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25% 상호 관세’를 요구했다.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협상이 잘된 덕에 15%로 낮췄다. 한숨 돌렸다지만, 사실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분야는 한미 FTA 체결 이후 관세율이 0%였기에 타격이 크다. 정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트럼프 당선 전후로 다자 간 자유 무역 협정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물밑에서 이어왔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대표적이다.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주도하는 세계 4위 규모의 자유 무역 협정으로, 한국은 세계 주요국과 FTA를 체결한 상태라 여기에는 공식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태세 전환으로 수출 시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무역 협정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주력 수출품 산업에는 호재이지만, 우리 농업계에는 걱정거리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농축산물의 수입 장벽이 낮아지면 판매 가격도 낮아지고 안 그래도 소득이 낮은 농가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에게 이 지점을 짚어준 후 계량경제학을 이용해 피해액을 직접 계산하도록 수업을 설계했다. 실제 정책 입안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농가의 피해액과 소비자의 이익 등 화폐로 수치화된 금액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계량경제학의 수요 탄력성, 공급 탄력성 등의 원리는 고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계산식 또한 낯설긴 하지만 고교에서 배우는 수학으로 쉽게 계산할 수 있다. 학생들이 구하기 어려운 전문 데이터와 식을 공유해 직접 다뤄보면서 교과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는 한편, 무역 정책과 시장의 변화가 국내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도록 유도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사회 교과나 일반 상식으로 접한 수요·공급 곡선을 활용해 계산해보며 매우 흥미로워 했다. FTA 체결로 수출과 수입이 몇 퍼센트 증감한다는 뉴스 속 이야기를 데이터로 직접 다뤄보며 경제학의 기초 개념을 재밌게 익히는 한편, 농업 현황에 대한 관심도 고조됐다. 수업에 변화를 준 보람을 느꼈다. (웃음)
Q. 수업을 진행한 농경제 전문가로서 우리 학교 교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사람들은 미국을 기술 강국으로만 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농업대국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농업 교육을 강조한다. 곡물부터 특산작물까지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는 유치원에서조차 지역 농산물을 교육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유년기부터 농업에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땅과 생산물에 친숙해지고 중요성을 인식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규 교육과정 안팎에서 아이들이 지역을 불문하고 농업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농업에 대한 인식이 노동집약적인 전근대 산업에 머물러 있고, 고되면서도 부가가치는 낮다고 생각해 기피하거나 무관심하다. 하지만 현대 농업은 6차 산업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첨단 분야와 접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스마트팜을 이용한 생산 혁명, 유전자 재조합을 통한 맞춤형 작물 양산, 다양한 농작물을 활용한 식품 가공·유통 등 거의 모든 계열·산업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진로를 탐색하는 무대로 삼기도 좋다. 인류의 난제인 빈곤 문제를 해결할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어릴 때부터 발달 단계에 맞춰 농식품은 물론, 관련 데이터나 무역, 기술 등을 소재로 한 농업 교육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에서 농업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기회가 늘면 좋겠다.
Q. 농업, FTA와 관련해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최근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인 인도가 자국 물가 안정을 이유로 수출을 중단하면서 전 세계 쌀값이 폭등했다. 이로 인해 올해 초에는 필리핀이 쌀값 급등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이모작이 가능한 기후임에도 국가의 전략에 따라 쌀은 수입에 의존했던 상황이라 서민들의 고통이 컸다. 이 같은 현상은 ‘식량안보’가 허상이 아닌 실제적인 위협임을 보여준다. 특히 지금은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다. 트럼프와 같은 정치적 상황은 물론, 기후변화나 병충해, 감염병, 무역·유통적 요소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제품은 대체하거나 쓰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식량은 생존과 직결된다.
농업은 ‘살기 위해’ 포기해서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산업이다. 경제 수준의 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농업과 그 파생 산업의 상업성·성장성은 갈수록 높게 평가받고 있다. 원래 쇠퇴할 수 없는 산업인데 미래 먹을거리 분야로 거듭나며 수많은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데이터나 AI, 생명공학, 경영·경제 등 학생들의 선호 진로와 접목된 분야도 많다. 우리 청소년들이 새로운 눈으로 농업을 바라보고 관심을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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