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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호

교과서로 세상 읽기 8 DNA

DNA가 연 비밀의 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드디어 잡았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을 공포로 물들였고,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전 국민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가’를 묻게 했으며, 이후 연쇄살인범이 검거될 때마다 소환됐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수사 당국은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인 ‘이춘재’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처음엔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그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앞에 죄를 인정했다. 증거는 바로 범인의 DNA다. ‘살인의 추억’보다 강력한 ‘DNA의 기억’을 소개한다.

취재·사진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TV와 신문기사로 본 세상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3차 화성살인사건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11일 국립과 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3차 화성살인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는 내용을 구두로 통보받 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현재까지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전체 10개 사건 중 3차, 4차, 5차, 7차, 9차 등 5개 사건으로 늘어났다.”
_<중앙일보> ‘화성연쇄 3차 사건도 이춘재 짓… 증거물서 DNA 또 나왔다’ (2019. 10. 12) 기사 중

교과서로 뉴스 이해하기

생명체의 정보를 담은 유전자, DNA

<기생충>으로 칸을 뒤집은 봉준호 감독은 모두 알고 있지? 봉 감독의 대표작 중 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이 있어. 1986년 9월 15일 최초로 피해자가 발생한 후 1991년까지 총 10명의 여성이 무참히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야.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한 덕에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사건이자 대표적인 장기미제사건으로 대중에게 각인됐지.

지난 9월 말, 드디어 범인을 잡았어! 대중의 관심이 이 사건을 묻히지 않게 했다면, 범인을 특정한 건 DNA야. 사건 당시 유류품을 정리하던 미제사건팀 수사원이 ‘매의 눈’으로 의류에서 미세한 오염 흔적을 발견했고, 여기서 추출한 DNA가 무기수로 수감 중인 ‘이춘재’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거든. 기특한 DNA, 익숙하지?

고등학교 <생명과학Ⅰ>에서 배우잖아! 4단원의 ‘염색체와 유전물질’ 을 한 번 펼쳐보렴. 꽈배기처럼 생긴 그림이 보일 거야. 너희의 외모·성격·지능·질병까지 관장하는 생명체의 정보은행, DNA란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DNA는 염색체 속에 들어 있는데, 하나의 염색체 속에는 엄청난 길이의 DNA 사슬이 꼬이고 또 꼬여 있어. 꼭 몇 가닥의 새끼줄을 여러 번 겹쳐 꼬아서 만든 동아줄 같지? 인간은 수정란의 세포 분열로 인해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하나의 개체야. 세포가 분열할 때 DNA도 복제돼 나눠지기 때문에 신체 어느 부분의 세포라도 똑같은 DNA를 가질 수밖에 없대. 즉 혈액·피부·머리카락·침 등 세포가 포함된 신체의 일부분만 분석해도 개인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지. 그럼 너랑 같은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어쩌냐고? 안심해 친구! 너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해줄게.




다시 읽는 DNA

DNA가 같을 확률 3천억 분의 1


알렉 제프리 교수.

DNA는 개인이 갖는 ‘유일한’ 정 보의 집합이야. 혈액형은 물론 성별, 인종, 거주 환경, 부모의 병력이나 특정 물질에 대한 반응 도 포함하고 있어 DNA가 같은 사람이 태어날 확률은 3천억 분의 1이래.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니, 나와 같은 DNA를 가진 사람은 동시대에 존재하기 어려워. 때문에 DNA 분석 정확도는 99.99% 이상이고, 그 결과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범죄 수사나 신원 감식, 친자 확인 등에 왜 DNA 검사를 활용하는지 이해되지?

그 고마운 ‘DNA’가 첫 사건 발생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었는데, 안 잡고 뭐 했냐고? 이봐 이봐~ 그땐 1980년대야. 당시 우리나라는 DNA 감식 기술이 없었어. 영화에서도 외국에 감정을 의뢰하잖아? 사실 DNA 감식의 역사 자체가 짧아. 영국의 유전학자인 알렉 제프리 교수가 80년 대 초 실험 도중 우연히 DNA가 가족 간의 유사성 외에 개개인의 특징도 가지고있음을 발견했거든. 동일한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횟수가 사람마다 달라서 개인 식별에 활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됐지. 마치 지문처럼. 그리고 1983년과 1986년에 영국 시골 마을에서 두 건의 강간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제프리 교수의 DNA 감식 기술을 최초로 사용했어. 사건이 일어난 마을 일대 남성 5천500여 명의 DNA를 분석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지. 이후 1990년 전후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DNA를 수사에 활용했고,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늦게 도입됐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어. 수사에 동원된 경찰만 205만 명이고, 수사 대상자로 명단에 오른 사람이 2만 1천280명, 지문을 대조한 사람은 4만116명에 달해.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지. 지금, 여러 논란이 있지만 당시 참혹한 상태로 발견된 피해자들을 눈앞에서 봤던 수사관들은 정말 ‘미치도록 잡고’ 싶었을 거야.


유효기간 없는 DNA의 마커 분석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들을 건조한 환경에서 잘 보관해왔어. DNA 감식에 가장 큰 적은 습기야. 건조한 환경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DNA를 검출할 수 있지만, 습한 환경에서는 검출이 어렵거든.

DNA는 아데닌(A)·구아닌(G)·티민(T)·시토신(C) 등 4개 염기(DNA나 RNA의 구성 성분인 질소를 함유한 고리 모양의 유기 화합물)가 서로 쌍을 이루며 나열된 염기서열로 구성돼 있어. DNA 분석에 기반한 신원 확인은 DNA 중에서도 ‘GTAGTAGTA’처럼 특정 기능 없이 짧은 염기서열이 5~50번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염기서열 반복구간(STR)’을 활용하지. 이걸 DNA 마커 분석이라고 해. 무슨 소리냐고? 잘 들어~ 나도 힘들다. 다시 말하면 사람마다 고유한 염기서열 부위를 갖는데 범죄 수사의 DNA분석은 2~5개의 짧은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STR을 사용하는 거야. 이 반복되는 수가 개인마다 다르니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거지.

이렇듯 지금 DNA 분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어. 1991년 우리나라 국과수에 ‘유전자 분석실’이 생기고 이후 DNA 분석이 수사에 본격적으로 도입됐지. 지난 수십 년 간 국과수의 DNA 분석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해왔어. 분석 장비도 고도화되고, 시약도 발전하면서 인체 구성물 중 아주 적은 세포로도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단다. 덕분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도 밝혀낼 수 있었던 거야.





한걸음 더 생각하기


사진 연합뉴스


DNA 신원 확인 정보 데이터베이스(DB)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데 기여한 DNA 마커 분석 외에 또 다른 공신은 DNA 신원 확인 정보 데이터베이스(DB)야. 2010년 정부는 일명 ‘DNA법’이라 불리는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표했어. 이 DNA법을 근거로 범죄 현장의 증거물이나 피의자, 범죄자로부터 확보한 DNA 정보를 DB로 구축하고, DNA를 대조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특정 짓는 일이 가능해졌지. 2018년까지 총 23만3천221명의 시료가 채취돼 있대.

이 DB 덕분에 용의자 이춘재의 DNA가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옷 등 증거물 3건에서 검출된 DNA와 같다는 걸 밝혀냈어. 증거물만 남아 있다면 과거의 사건이라도 발달한 과학수사 기술로 용의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수사관들은 과학의 발전을 기대하며, 증거물을 최대한 수집해 온전하게 남겨놓는 것 또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대.

DNA를 통한 범인 색출은 더 정교해질 거야.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 김태완군 염산 테러 사건 등 다른 장기미제사건들의 범인들도 DNA가 하루빨리 잡아주면 좋겠어.


과학+권력=?

이렇듯 고마운 DNA지만 어두운 이면도 있단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 건 DNA DB, 이 DB 구축을 가능케 한 DNA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지. 사실 이 법안 제정 당시에 찬반 논란이 거셌어. 개인 정보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됐거든. DNA가 개인의 생체 정보와 가족 정보를 포함한, 매우 사적인 정보기 때문이지. 그러한 이유로 이 DNA 법안은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해, 올해 12월 31일 이후로는 채취에 제동이 걸릴 거라고 해.

DNA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로 인해 정부가 개인의 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관리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거야. 이게 무슨 문제냐고? 입장을 바꿔보자. 너는 자각하지도 못 했던 유전적 질병을 정부는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공무원이나 공공기업 취업이 막히고, 나아가 보험을 들 수 없게 된다면? 일면식도 없던 먼 친척이 흉악한 범죄자라며 그 DNA를 나눈 가족인 너를 차별한다면? 유출을 막으면 될 거라고? 부모님께 여쭤봐. 은행이나 쇼핑몰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비밀번호를 바꿔달라는 문자를 받은 적이 없냐고 말이야.

우리는 이미 감당 불가능한 과학과 통제 불가능한 권력이 만나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를 통해 배워왔어. 1, 2차 세계대전과 핵폭탄을 봐봐. 흠…. 너무 오버한다는 야유가 들리는군. 그러나 어떠한 과학기술이라도 사용하는 이에 따라 그 이면에 위험이 도사릴 수 있음을 모두가 자각하고 있어야만 해.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와 자연과 인간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를 예상하고, 위험부 담을 줄이기 위해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촉각을 곤두세워 고민할 필요가 있어. 수많은 미해결 사건의 실마리가 되어준 DNA 기술 역시 개인정보 노출 등 우려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거야.


열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이 우성인자로 신분을 위장해 우주항공사의 꿈을 이루는 내용을 그린 SF 영화 <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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