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이 처음부터 목표 전공을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처음 생각한 것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서현씨도 그중 하나다.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입학한 고교에서, 목표한 바에 맞춰 공부하며 새로운 길에 닿게 됐다. ‘불확실성’이 시대를 대표하는 특성인 지금, 어느 분야에도 ‘쓸모 있는’ 데이터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 서현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 전지원 기자 support@naeil.com
사진 배지은
유서현 | 고려대 데이터과학과 입학 예정 (인천하늘고)
생명과학·물리학 선택한 이유? ‘공학’ 향한 진심!
고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생명과학 계열 진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먹을거리부터 질병까지,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물을 활용한 실험 활동에도 흥미를 느껴 생명공학 연구원이나 수의사를 꿈꿨다. 이는 과목 선택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물리학Ⅰ·Ⅱ> <생명과학Ⅰ·Ⅱ> <고급물리> <고급생명과학> <확률과 통계> <기하> <미적분> <수학과제탐구> <심화수학Ⅰ·Ⅱ> <고급수학Ⅰ·Ⅱ> 등 수학·과학을 중심으로 이수했다. 향후 활용 가능성을 고려해 컴퓨터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래밍> 수업도 들었다. 모교인 인천하늘고는 전국 단위 자사고인 만큼 심화 과목이 여럿 개설돼 관심 분야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학문의 진리를 추구하는 자연과학보다는 세상을 편리하게 바꾸는 공학에 관심이 컸어요. 생명과학과 함께 선택할 과학 과목을 고민하다 보니 공학의 뿌리라고 불리는 물리학에 시선이 가더라고요. 당시 수술 로봇이나 로봇팔 등의 급격한 발전이 주목받기도 했고요. 생명과학과 함께 배우면 생명공학자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과학 과목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일부 반영됐죠.”
화면 속 데이터가 현실이 되는 순간
희망 진로가 명확했던 만큼, 탐구 활동도 처음엔 지망 분야에 집중했다. 한데 2학년이 되며 활동 주제에 변화가 생겼다. <확률과 통계>에서 조건부 확률 기반의 베이지안 통계로 의료 데이터를 탐구한 것처럼, 교과 내용에 데이터를 더한 탐구가 늘어난 것. 학교 특색 프로그램으로 진행했던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탐구’, 진로선택 과목 <커뮤니케이션의 공학적 이해>가 전환점이 됐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탐구’의 경우 처음엔 관심 밖이었지만, 자율주행에 적용되는 기술이 생명공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도전하게 됐다.
“자율주행에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해요. 코너를 돌 때만 해도 네 바퀴의 회전각과 방향, 힘의 크기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죠.마침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파이썬을 배워놔, 공학적 계산을 반영한 프로그래밍을 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코너를 돌 때 앞바퀴의 조향각 차이를 조정해 안정성을 높이는 ‘아커만 조향 기구’를 장착한 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직접 코딩해 주행 과정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했어요. 동시에 움직이니 차이가 바로 보이더라고요. 사실 그 전까지는 코딩이 화면에 글자만 뜨는 작업 같아서 지루했거든요. 근데 결과를 직접 보니까 코딩을 비롯한 컴퓨터 관련 전공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이론만 배우고 문제만 풀었으면 몰랐을 부분이죠.”
<커뮤니케이션의 공학적 이해>에선 선생님들이 문서 작업 시 자주 쓰는 단축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그 결과 데이터가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점을 배웠다.
“의사소통과 공학을 결합한 수업이었는데, 학생들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이 선생님이잖아요. 공문부터 세특까지 과중한 서류 작성에 시달리는 선생님을 도울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면, 수업의 취지를 살리면서 재밌는 탐구를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여러 번 수정하다 보니 프로그래밍이 단순히 결과를 빠르게 도출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죠. 특히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 사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함께 고려해야 의미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이후 다른 과목에서도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탐구했죠.”
화학의 한계 넘어 데이터로 확장한 진로
전국 단위 자사고라는 모교의 특성상 높은 내신 성적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다채로운 수업과 깊이 있는 활동 기회가 많았기에 학생부종합전형을 주력으로 삼았다. 목표가 뚜렷했던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수시 지원을 준비하던 중, 예상치 못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일관되게 생명공학을 지망했는데, 막상 지원을 앞두고 결정하려니 고민이 됐어요. 의약학 계열의 인기가 많다 보니 생명공학이나 바이오 관련 학과 역시 합격선이 높거든요. 무엇보다 화학을 이수하지 않아 다른 지원자에 비해 불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과학과 화학은 학문적 연계성이 깊기에 생명공학에서도 물리학보다는 화학 지식이 더 많이 요구되더라고요. 실제로 동아리에서 생명공학 관련 실험을 하면서 배경지식이 부족해 애를 먹은 적도 있어요.”
결국 서현씨는 전공을 분산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기존에 지망했던 생명공학 전공과 함께, 물리학 이수가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공학 계열 광역 모집 단위에도 지원했다. 그리고 AI와 빅데이터 관련 전공도 후보에 올렸다.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인데, 대학 졸업 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어요. 그렇다면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활용되는 ‘큰 줄기’를 배울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학생부를 꼼꼼히 되짚어보니 수학과 컴퓨터, 데이터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이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AI와 빅데이터 관련 전공에도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죠.”
고민 끝에 서울대 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 고려대 공과대학(학업우수형)·데이터과학과(계열적합형), 서강대 AI자유전공학부, 성균관대 공학계열(융합형)·글로벌경제학과(탐구형)에 지원했다. 이 중 5곳에 합격했고, 현재 고려대 데이터과학과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서현씨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순간순간에 몰입하되,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마세요.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계획한 뒤, 미션처럼 하나씩 완수하다 보면 성취감이 생길 거예요. 반대로 쉬는 시간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다른 친구와 비교하거나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그만두세요. 불안감과 부담감만 커지니까요. 그런 고민 속에서는 정답을 찾기도 어렵고,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어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와 활동, 휴식의 균형을 맞추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예요.”
/의미 있었던 선택 과목/
▒ <물리학Ⅰ·Ⅱ> <생명과학Ⅰ·Ⅱ> <고급물리학> <고급생명과학> 생명공학자라는 진로에 맞춰 선택한 과학 과목이다. 기초부터 대학 수준의 심화 내용까지 공부하며 깊이를 갖출 수 있었다.
▒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고급수학Ⅰ·Ⅱ> 단순한 계산을 넘어서 개념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복잡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석해 확장하는 사고의 토대를 형성했다.
▒ <세계지리> 사회 계열 과목이 암기 위주라는 인식을 깨고, 데이터와 환경 조건을 함께 해석하며 사고의 범위를 넓히게 해준 과목이다.
▒ <프로그래밍> 파이썬의 기초 개념을 익힌 뒤 이를 실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며, 문제를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을 기르게 됐다.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1학년/
<확률과 통계> 의료 분야에서는 기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환자 데이터에 대한 예측 정확도를 높인다는 것을 알아냄 <문학> 글 전체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폭넓은 시선을 갖추고 있어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냄 <통합과학> <떨림과 울림(김상욱)>을 읽고 작게는 우리 존재에서, 넓게는 세계에 관한 생각까지 물리학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고 철학적 사유를 확장함
/2학년/
<고급수학Ⅰ> 행렬을 학습하며 그래프를 통해 주어진 상황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 호기심을 느껴, 한붓그리기와 오일러 회로의 존재 여부와 경로를 탐구함 <물리학Ⅱ> 면학실에서 여러 개의 노트북 충전선이 얽혀 불편을 초래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무선 전력 방식을 활용한 해결 방안을 고안함 <프로그래밍> 철자 맞추기와 숫자 게임 요소를 결합한 활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활용해 변형된 행맨 게임을 기획하고, 자료형·제어문·함수 등 파이썬의 다양한 기능을 적용해 프로그램을 구현함
/나를 성장시킨 모교의 특색 활동 | 수학여행 연계 프로그램/
“인천하늘고에는 수학여행과 연계된 탐구 프로그램이 있어요. 저희는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오사카 국제공항을 주제로 진행했는데, 공항 외벽 유리가 청소하기에 상당히 어려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계속 힘들게 닦지 않아도 될까’라는 질문에서 고민을 시작했어요. 조를 나눠 한 조는 자가 치유 코팅 소재를 조사하고, 다른 조는 유체역학을 응용해 바람의 흐름과 압력을 시뮬레이션하며 해당 코팅이 실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을지를 함께 살펴봤죠. 수학여행을 단순한 체험으로 끝내지 않고 현장을 탐구 대상으로 전환해보는 경험을 해 더 오래 기억에 남았고, 이후 세특 활동으로도 연결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어요.”
댓글 0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