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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호

교과서 파먹기 8 | <미술> 인상주의 _ 카메라와 튜브물감

기존 회화를 ‘갈아엎다!’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인간은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1839년 사진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하자 당시 유럽 언론들은 맹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훗날 누가 바보가 됐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 뒤 1841년에는 튜브물감이 탄생했다. 현대인에겐 전혀 새롭지 않은 이 두 발명품은 기존 회화의 패러다임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미술사를 쓰게 했다. 이름하야 ‘인상주의’다.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덕에 수능 <국어> 지문으로도 종종 출제되는 인상주의를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를 통해 만나보자.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
참고 <황금가지> <세 종교 이야기> <호모 사피엔스>









사진기의 발전사

사진기의 원리를 가장 먼저 캐치하고 활용한 사람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거의 모든 것의 시초인 아리스토텔레스, ‘아 아찌’야. (999호 ‘아리스토텔레스’편에 다~ 설명돼 있음!)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구멍을 뚫어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거꾸로 된 형태로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오브스쿠라’라고 불린 이 방법은 중세 들어 아 아찌에 버금가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 외 화가들에 의해 밑그림의 윤곽을 그리는 도구로 발전하게 돼.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고 반대 쪽 벽면에 종이를 붙이는 거야. 그렇게 종이 위에 영상이 비치면 선을 따라 그리고 똑바로 세우면 짜잔~ 밑그림 완성!

이후 발전을 거듭한 카메라 오브스쿠라는 작은 상자 형태로 소형화돼. 그러다 155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르다노는 구멍 쪽에 볼록렌즈를 대면 영상이 더욱 또렷해진다는 걸 발견했어.

뒤이어 1826년 프랑스 화학자 니엡스는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기를 내놨어. 하지만 모델이 무려 8시간 꼼짝 않고 있어야 간신히 한 장 건질까 말까 한, ‘참을 인(認)’ 자 100만 번을 요하는 사진기였지. 게다가 나온 결과물의 형체도 나인지 너인지 모를 만큼 불분명했다나?

그러다 니엡스와 공동 연구를 했던 프랑스의 화가 다게르가 1839년, 드디어 현대적인 사진기라 불리는 ‘다게레오타이프’를 세상에 내놓게 돼.

새로운 기술은 곧 일반인에게도 보급됐고 그 뒤 사진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1인 1사진기(스마트폰도 사진기잖아~)를 넘어 사진을 찍으면 바로 확인은 물론 보정까지 가능한 시대가 됐지.




사진기가 탄생시킨 ‘인상주의’

고대 플라톤 시대부터 예술은 ‘세상을 모방하는 도구’로 인식돼왔어. 미술가라면 으레 눈으로 본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여겼지. 이는 19세기 초까지 서구 미술의 변치 않는 ‘예술적 가치’였어. 그러던 와중에 사진기가 ‘뿅!’ 하고 나타난 거야. 사람이 아무리 정교하게 사물을 그려낸다 한들 사진기보다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냐고~

사진기의 발명은 ‘모방’을 추구하던 서양 미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어놨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들은 초상화가였지. 사진기가 등장했다고 바로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수요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거든. 또 미술품을 복제해서 서민에게 팔아온 동판화가가 그다음 희생양이 됐어. 이제 화가들은 밥줄이 끊길 위험에 처한 거야. 여기서 잠깐! 인간의 잠자던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급발휘될 때가 언제? 위급할 때! 화가들은 새로운 미술 신대륙 발견을 위해 몸부림쳤고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를 증명하듯 ‘노오력’하며 분투한 결과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현대 미술의 장을 연 ‘인상주의’가 탄생하게 된 거야.




수많은 이들을 ‘깜놀’하게 한 <올랭피아(1863년)>


인상주의로 가는 문을 연 마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는,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작품 <올랭피아>! 일단 그림을 다시 자세히 한 번 봐봐. 어때? 대단해 보이니? 혹시 ‘그림 속 여인네가 그닥 예쁘지도 않고 원근법, 입체감 다 무시한 데다가 엄청 잘 그린 그림도 아닌 거 같은데, 이게 왜 걸작이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정상이야, 안심해.

마네가 <올랭피아>를 출품하자 미술계에선 ‘천박하고 뻔뻔스럽다’는 악평을 쏟아냈어. 전시회장은 욕설과 야유가 난무했고 흥분한 관객이 그림을 찢어버리려고까지 했다지. 하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은 아니었어. 지금 우리에게 인상주의의 거장이라 불리는 모네, 르누아르, 드가를 비롯해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주자이자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까지 ‘우리의 모든 르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됐다’며 마네를 치켜세웠거든. 왜냐!? 이제 이유를 아낌없이 설명해주겠어!

사진기가 발명됐다고 해서 화가들이 급깨달음을 얻어 바로 인상주의를 탄생시킬 수는 없어. 누군가는 앞장서서 기존의 문을 부숴야 했고 온몸으로 비난을 감수해내야만 했지. 그걸 마네가 해낸 거야. ‘그림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후배 화가들을 새로운 회화의 길로 안내한 선구자였던 거지.
다시 <올랭피아>를 볼까? ‘올랭피아’는 그 당시 성매매를 하던 여성을 의미해. 마네가 올랭피아를 그리기 전까지 누드는 그 여성이 비너스처럼 종교나 신화 속 존재일 때만 화폭에 담을 수 있었어. 따라서 많은 남성 화가는 숱한 여성의 누드를 그리면서도 이들이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야만 했지. 그런데 마네가 당시 성매매 여성을 찾는 상류층 남성들의 부끄러운 현실을 ‘콕’ 끄집어낸 거야. 이건 혁명이었던 거지. (그림 찢으려던 아찌, 흠….)


그림은 그림다워야 한다

마네 그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원근법과 작별을 고했다는 거야. 사진기가 나오기 전에는 2차원인 평면에 현실 세계인 3차원을 표현하려 엄청 애썼지. 하지만 마네는 ‘그림이 그려지는 곳은 평면이다. 이제 사진과는 다른 것을 표현해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을 이뤄낸 거야. 마네의 이 같은 사고는 이후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추상주의 등 모든 모더니즘 회화의 기본 정신으로 이어진단다. 지금의 회화는 죄다 ‘완전 평면’을 자랑(?)하는데 이 시발점이 바로 마네란 말씀!

게다가 마네의 그림은 굉장히 단순해. 그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를 버리고 색채와 붓질도 최대한 줄이는 방향을 택했어. 또한 기존 그림의 법칙인 정중앙을 향한 ‘하나의 시점’을 파괴하고 한 폭의 그림 안에 두 개의 복수 시점을 넣는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지.


실수로 아니다~
전경을 그린 시점과 배경을 그린 시점이 다른 <폴리베르제르 바(1882년)>



이것이 바로 사진은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그림이다! 인상주의 예술 사조를 탄생시킨 <인상, 해돋이(1872년)>.


빛의 화가 모네

마네가 열어젖힌 문으로 힘차게 걸어 들어간 대표주자가 바로 모네야. 모네는 마네에게서 ‘평면성과 단순성’을 전수받았어. 또한 ‘빛’이라는 자신만의 개성도 놓치지 않았지. 더 이상 실물과 똑같은 그림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모네는 자연을 ‘빛의 반사로 탄생한 무수한 색채 조각의 총합’으로 바라봤어. 즉 이제껏 화가들이 사물의 형태에 주목했다면 모네는 그 모든 것을 빛으로 보기 시작한 거야.

1872년 어느 날, 모네는 항구에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끊임없이 변해가는 바다의 색깔과 태양이 떠오르는 찰나를 짧고 빠른 붓질로 화폭에 담아냈어. 그는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은 그리지 않았어. 오직 현재의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빛들을 그렸지. 그렇게 <인상, 해돋이>라는 모네의 대표작이 탄생했단다. 모네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게 뭐야? 그리다 말았잖아, 첫인상만 슬쩍 그려놨네!’ 하며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인상주의’라 불렀어. 즉 모네의 작품으로부터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가 탄생한 거지.

교과서에 실린 인상주의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살펴볼까?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의 한 사조. 빛에 의해 변화하는 색채와 시각적인 인상을 포착해 밝은 색채와 즉흥적 붓질로 재현하고자 한 미술 운동. 후에 음악과 문학으로까지 전파되며 근대 예술의 큰 영향을 줌!’ 와우, 어마어마하고만! 사진기~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인상주의 그림의 일등공신 ‘튜브물감’

모네를 포함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빛!’ 그래, 빛이 사물에 닿는 순간 사물의 색채와 형태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순간적으로 잡아내 그 인상을 화폭에 표현하는 것이라 했지~ 그러려면 어디서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바깥! 딩동댕~ 이러한 이유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다수가 풍경화란다.
그런데 문제 발생! 야외에서 대상을 자유롭게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려면 미술 도구들을 자유자재로 들고 다닐 수 있어야 하잖아. 하지만 물감을 담을 용기가 마땅치 않아 당시 화가들은 소나 돼지의 방광에 담아서 보관하거나 운반했어.

그나마 실내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이런 열악한 물감통(?)이 용서가 됐지만 야외에서 쓰기에는 몹시 불편했다는 거지. 용기가 자주 터지는 데다 물감이 새기도 하고 한 번 사용하면 다시 밀봉이 불가능해 물감이 굳고 재사용할 수 없었거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튜브물감은 1841년 (그림을 그릴 때마다 물감을 담은 돼지 방광이 터져 울화병이 난) 미국의 화가 존 랜드에 의해 발명됐어. 주석으로 제작되고 마개로 밀봉된 튜브물감은 저장 수명이 길고 누출되지도 않으며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 덕분에 화가들은 자연의 모습을 기억에 의존해 그리지 않고 야외에서 자유롭게 화폭에 담을 수 있었고.

인상파의 거장 중 한 명인 르누아르가 ‘튜브물감이 없었다면 인상주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라니, 인상주의의 출발을 사진기가 도왔다면 그에 날개를 달아준 건 튜브물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해.

이번 방학, 인상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직접 전시회를 찾기 힘들다면 아쉽지만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라도 말야. 그리고 혼자 알면 서운하니까 친구들에게도 소개하며 설명을 좀 곁들여주고. 혹시 아니? 급존경의 눈빛을 받게 될지~




교과서는 학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교과서의 재미를 알아가고,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서 파먹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놓쳤거나, 어려워서 지나친 교과 단원을 쉽게 만나고 싶다면 이메일(lena@naeil.com)로 문의해주세요._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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