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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칼럼

956호

ISSUE INTERVIEW | 인공지능 연구하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남호성 교수

“문·송 시대 극복할 해법? 수학과 코딩 배워라”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은 ‘언어’다. 인간의 음성으로 ‘로봇’에게 정확한 명령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와 같은 첨단 공학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나선 의외의 인물이 있다. 문과생들로만 구성된 인공지능 연구소 NAMZ를 이끄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남호성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학창 시절 ‘수포자’였던 그가 어떻게 수학과 코딩에 능한 언어공학자로 거듭나게 됐는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 찾아갔다. ‘문과라서 죄송’하지 않아도 될, 문과생을 위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진로 비법을 듣고 왔다.

취재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사진 이의종




남호성 교수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후 별다른 목적의식 없이 코딩 학원을 다니다가 우연히 지원한 삼성 SDS 공채에 합격, 2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다시금 연구에 목말라 직장을 그만두고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로 건너가 인간의 언어 체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언어과학’을 연구했다. 귀국 후 취업에만 급급한 대학의 현실에 좌절, 후학 양성의 꿈을 접을 뻔했으나 문과생들에게 일대일로 수학과 코딩을 가르치면서 언어공학 연구소 ‘남즈(NAMZ)’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하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남호성 교수
“문송 시대 극복할 해법? 수학과 코딩 배워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것인가?

언어공학이다. 언어를 이루는 문자와 음성에 관련된 모든 기술적인 연구를 한다. 음성 인식, 음성 합성, 텍스트 분석, 대화 처리, 발음 평가 등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로 최신 곡을 부르게 하는 기술, 자동차에 들어가는 음성 인식 기술, 쇼핑몰의 전화 상담 내용을 자동으로 텍스트화한 후 상담 내용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기술, 영어를 따라 읽으면 그 음성을 분석해서 점수화하고 교정할 수 있게 돕는 영어 교육 관련 기술 등이다.

모두 첨단 인공지능 기술인데 언어에 대한 전문 지식을 수학과 코딩으로구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간의 연구를 통해 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많고, 앞으로 개발할 기술도 무궁무진하다.


영문과 교수가 왜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나?

인공지능 시대에 로봇과의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언어’다. 어떤 종류의 언어라도, 발음이 부정확하더라도 인간의 명령이 로봇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비서’를 떠올리면 언어가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언어 전문가가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언어 전문가 대부분이 문과 출신이라서 공학적인 지식이 없다 보니 언어 관련 기술을 개발할 때 공학자들과의 협업을 필수로 여긴다.

실제로 대학원 시절 공학자들과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함께했는데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적이 있다. 그 이후 막연하게 코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프로그래머로 취업까지 했다.

당시엔 언어학을 완전히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내 안에 있던 언어학과 공학이 ‘화학적인 융합’을 일으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융합’이다.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협업하는 것은 물리적인 ‘결합’이지 진정한 의미의 융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수포자’였는데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나?

수학을 못해서 문과를 갔고, 영문과는 시험 성적에 맞춰 선택한 진로였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학을 공부하려니 솔직히 죽을 맛이었다. 반면 언어학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음향학·음성학·해부학·물리학·심리학 등 ‘언어과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내가 과학과 수학에 흥미가 없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코딩을 배우면서 학창 시절 기피하던 수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학을 만나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배운 코딩으로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지금은 수학에 완전히 매료돼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수능 시험에 나오는 수학 문제는 지금도 한 문제도 못 푼다. 등수를 매기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꼬아놓은 복잡한 문제는 진정한 수학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문과 출신이 공학을 공부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용어의 갑질’ 때문에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았다. 수학이든 공학이든 어려운 전문 용어 자체가 넘기 힘든 진입 장벽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가능했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름대로 힘겹게 공부를 해나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별로 대단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렇게 익힌 것을 엑기스만 뽑아서 몇몇 제자에게 전수했고, 그들이 다시 친구와 후배에게 배운 것을 공유하는 ‘배움의 다단계’를 거쳐 지금의 NAMZ가 탄생했다.

‘Novelty AtM ediaZen’의 약자지만 나와 닮은꼴이란 의미도 담아 ‘남즈’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즈’가 문과 출신 핸디캡을 딛고 공학자로 거듭나는 데는 ‘이타적 이기심’도 한몫했다. 내가 잘되려면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든 말인데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수학과 코딩을 꼭 배워야 하는 이유는 뭔가?

공대생은 수학과 코딩배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인문대생은 수학이 싫어서 여기 왔는데 그걸 왜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지금은 수학과 코딩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인문학 전공자들은 취업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삼성을 그만두고 예일대 해스킨스 연구소로 유학을 갔다 돌아와서 맞닥뜨린 국내의 현실은 처참했다. 모두 취업에만 매달려 있어 나조차 언어과학 연구를 이어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언어과학에 수학과 코딩을 융합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언어공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취업과 기술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몸소 증명했듯 수학과 코딩은 문과생의 취업이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고 자신만의 진로를 개척할 기회를 만들어줄 훌륭한 도구다.


‘수포자’라면 수학과 코딩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수학과 코딩은 대단한 학문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기술이며 일종의 도구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금방 포기해서는 안 된다.

소위 ‘존버 정신’으로 열심히 버티면서 연습하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 너무 어렵고 싫다고 해서 진짜 수학의 실체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 한 번쯤은 자신에게 진짜 수학을 만날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코딩 학원에 다니기는 힘들 것이고, 지금은 인공지능 언어인 파이썬(python)이 무엇인지, 코딩을 하려면 수학에서 어떤 걸 알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중에 좋은 책도 많고, 유튜브에도 도움이 될 만한 강의가 셀 수 없이 올라와 있다. 관심만 있다면 접근 방법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도올 김용옥 선생의 ‘영어,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는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최근 교육에서 강조하는 ‘토론’과 ‘창의’에 대해 한마디하자면, 주입식 교육을 멀리하고 토론을 통해 창의성을 기르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지식과 생각이 넘쳐 흐를 때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토론이고, 필요한 지식이 적절하게 주입돼야 그에 더해 창의적인 발상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토론을 해야 하고, 주입식 교육은 무조건 나쁘다고 비하하는 교육 현실은 납득하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듯 단순 협업을 융합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심적 부담을 벗고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탐구하면서 스스로의 진로를 밝혀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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